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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산티아고 1일차 여정 –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by everything everyday 202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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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의 첫 발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흐름 속에서 한 템포 멈추고, 내가 왜 이 길에 섰는지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입니다.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는 수많은 순례자들의 시작점이자,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돌바닥이 깔린 골목과 고요한 산자락 아래서 순례자들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준비합니다. 어떤 이는 기대감에 설레고, 어떤 이는 긴장에 말을 잃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
모두가 ‘처음’이라는 무게를 가슴에 안고 걷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처음’의 여정이 바로 오늘 소개할 코스입니다.
생장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이르는 1일차 여정.
이날은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 여정 중에서도 가장 고도 차가 크고 가장 상징적인 날로 꼽힙니다.

체력적으로 결코 쉽지 않지만,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한 걸음 더 순례자다운 마음과 몸의 자세를 갖추게 됩니다.


1. 이른 새벽, 출발의 긴장감 속으로

생장의 아침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합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오전 6시 이전에 숙소를 나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등에는 배낭, 손에는 스틱, 마음에는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출발 지점인 Rue de la Citadelle를 지나면 곧장 오르막이 시작되고, 초반 2~3시간은 경사진 농장길과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 ✅ 총 거리: 약 24~27km (선택 경로에 따라 다름)
  • ✅ 총 소요 시간: 7~9시간
  • ✅ 고도 상승: 약 +1,400m
  • ✅ 경로: 생장 → 오리손(Orisson) → 콜 드 레포더(Coll de Lepoeder) → 론세스바예스

초반부터 숨이 찰 수 있지만, 뒤돌아보면 산 아래로 펼쳐지는 구름 바다와 초록 들판, 멀리 아틀란틱 바다가 보이는 절경이 피로를 덜어줍니다.


2. 오리손 대피소와 중간 휴식

출발 후 약 8km 지점에 있는 오리손(Orisson)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쉼터입니다.
식수 보충, 간단한 아침 식사, 화장실 이용 등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일부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1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특히 체력에 자신 없는 경우 이 구간을 2일로 나눠 걷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오리손 이후는 고도가 본격적으로 상승하며, 나무가 거의 없는 능선길이 펼쳐집니다. 여름철엔 햇빛, 가을·봄엔 강풍과 추위에 대비해 방풍 자켓과 모자, 장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도 1,400m 지점인 콜 드 레포더(Coll de Lepoeder)를 지나면 경사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론세스바예스 쪽으로 하산하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무릎에 부담이 큰 내리막길이니, 트레킹 폴과 착지 주의가 필요합니다.


3. 론세스바예스 도착과 첫날 마무리

론세스바예스는 피레네 산맥 너머 스페인 땅에서의 첫 번째 마을입니다. 작은 수도원 마을이지만 순례자 알베르게, 성당, 레스토랑, 순례자 미사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편안하게 쉴 수 있습니다.

  • 🛏️ 알베르게 체크인 시 여권 & 순례자 여권(Credencial) 필요
  • 🍝 저녁 식사는 보통 순례자 메뉴(Pilgrim’s Menu) 선택 가능
  • ⛪ 저녁 8시 전후, 순례자를 위한 축복 미사가 열림

많은 이들이 “내가 진짜 걷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느낍니다.
피곤하지만, 고요한 론세스바예스의 밤공기와 함께하는 첫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함과 경외심을 안겨줍니다.

 


✅ 1일차 체크리스트 요약


체크 항목  
생장 출발 전 식사/물 준비
오리손 경유 여부 확인
방풍·보온 장비 착용
하산 전 무릎 보호 점검
론세스바예스 숙소 예약

 

✍ 마무리

많은 이들이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무릎과 어깨는 무겁고 온몸은 뻐근하지만, 가슴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충만감이 밀려옵니다.
아침에 출발할 때만 해도 “오늘 하루만 무사히 걷자”는 마음뿐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해냈다’는 조용한 자부심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떠오릅니다.

론세스바예스의 저녁은 고요하고 차분합니다.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순례자 미사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 누운 채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를 느끼는 밤.
이 첫날은 끝이 아니라, 진짜 순례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내일은 또 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고, 또 다른 고비와 만남이 펼쳐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오늘을 잘 걸어낸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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